29강. 갈6:14-18, 예수의 흔적
갈라디아서 정리
1.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
인삿말도 없이 근심과 분노로 바로 시작하는 유일한 서신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없애기 위해서 사도권을 공격하였다
2. 복음의 본질.
3장부터 왜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는가? (불완전하다.) *복음의 핵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대신 당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율법에서 해방되어 자유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십자가로 충분하다.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갈6:14).
3. 율법의 기능. 죄를 깨닫게 하고, 율법은 예수님 외에는 살 길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깨닫게 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한다.
4. 그리스도인의 삶*그러면 맘대로 살아도 되느냐?
갈2:20. 하나님의 자녀로 순종하는 삶을 산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5장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산다.
복음의 요약: 14절. 십자가만을 자랑한다.
"나는 오직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사역때문에 구원받은 것이지,
나의 공로나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자아상은 십자가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 세상은 십자가의 진리를 싫어한다.
* 자유주의자: 복음은 너무 관용이 없다.
* 인본주의자/공로주의자: 복음은 내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특별하다.
종교는 우리에 대한 것(something about us)을 자랑하게 하지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게 한다. 십자가면 충분하다! 완전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담대하고 안전하다. 우리는 십자가를 "자랑하는" 동시에 우리의 허물과 부족함을 생각하면 겸손함을 가진다. confidence & security.
14절. 내가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
바울, "세상은 이제 우리에 대한 힘을 행사하지 못한다." 왜? 우리의 의로움과 구원을 세상에서 찾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없다면, 세상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자유롭게 세상을 즐기고 누려라. 세상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세상을 숭배하지도 말라. 세상 사람이나 세상 일에 상관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세상과 분리되면 세상은 우리에 대하여 또 다시 힘을 행사한다. 내가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 세상이 나에 대하여 죽었다. *더 이상 세상에서 구원을 찾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면 충분하다. 세상은 나에 대한 지배권을 가질 수가 없다.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 공급자, 인도자, 궁극적인 안식이 되신다. /세상과 담을 쌓으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면 그것은 오히려 세상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자유롭게 세상을 즐기는 것이다. 누리는 것이다. 왜? 이 세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15절. 새로운 피조물.
종교적/도덕적 업적, 또는 종교적/도덕적 실패는 구원과 무관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십자가와 부활사건으로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 복음은 우리의 미래를 바꾸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됨.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음.
- 복음은 우리의 현재를 바꾸었다. 완전히 새로운 자아상을 주었고, 사람들과 관계하는 새로운 길을 주었다.
Inside-Out. 누구에게도 열등할 필요도 없고, 교만할 필요도 없다.
17절, 예수의 흔적
1. 할례(육체의 표시)와 예수의 흔적. 종교적인 흔적이 아닌 삶의 흔적을 내세우고 있다. 온 몸에 고문당하고 고난당한 표시가 있는 것이다.
2. 십자가는 세상이 싫어한다. 왜냐하면 구원받기에 합당한 인간은 없다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만물보다 심히 거짓된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라고 진단하기 때문에) 십자가는 걸림돌이다.
은혜의 복음
추상적인 진리가 아니다.
현재 깊은 충만함과 안전함이 있고, 장차 영생이 있는 삶이다.
주인과 종, 행위와 책임의 조건적 관계가 아니라, 사랑과 은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되었다. 징계는 있을지언정 형벌이나 심판은 결코 없다. 새로운 관계성, 새로운 정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