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기도로 성장한 막내아들’
류재진 집사
‘눈물의 기도로 성장한 아들’로 알려진 나는 행복하다. 하나님께서 좋은 부모님과 형들을 주셔서 여기까지 왔고, 손님들의 건강을 돕는 큰 식당까지 허락하셔서 기쁨으로 살아간다. 교회를 섬기는 가정 분위기에서 자라난 나는 어려서부터 어머님의 새벽기도회에 따라 다녔다. 가서 기도하다가 졸기 일쑤였지만, 새벽 공기를 헤치며 교회에 가는 일이 좋았다. 막내로 귀여움을 많이 받아서였을까,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구령대에 올라가 놀다가 다리를 크게 다쳤다. 큰 수술을 할 지경이었을 때, 어린 나이에 몹시 겁이 났다. 많이 울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은혜로 수술을 하지 않고 한 달 정도 만에 퇴원했다. 철부지 때인데도 ‘하나님 계시는구나’하는 체험의 기회가 되었다.
청소년기도 사고의 연속이었다. 오토바이 사고 네 번을 비롯, 트랙터에 깔리는 사고 등, 죽음의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부모님과 기도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회복되었다. 특히 왼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을 때 불구가 될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황에서 서울대병원에 6개월을 입원했을 적에는 울며불며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주변사람들은 부모님이 나를 ‘방목’해서 그렇다고 수군댔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사랑해주시고 믿어주셨다. 어쨌든 내 할 일은 하고, 주로 밤에 나가서 일으킨 사고였으니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영적으로 감사한 일은 지극한 신앙의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크고 작은 우환들이 닥칠 때마다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여쭙고, 나를 따뜻한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용납하신 수많은 일들에 깊이 감사드린다. 덕분에 교회의 또래 친구들이 많았고, 유광웅 목사님 계실 때는 노회 축구대회에 출전해서 우리 팀이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찬양을 좋아하셨던 천관웅 전도사님을 아이들이 많이 따랐고, 거리감을 좁혀 즐겁게 교회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름다운 추억이다. 우여곡절의 세월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40여명의 직원들을 관리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지난 일들이 모두 감사하다. 사람을 이해하는 폭, 상대의 입장, 대인관계에서의 친화력, 손님들께 감사하는 자세……. 이 모든 것이 지난 세월 동안 하나님의 인도보호하심과 부모님, 형님들의 사랑과 배려 덕분임을 새삼 깨닫는다. 언제나 삶이 감사한 은혜로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