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믿음의 유산

 

안학수 안수 집사

 

모태신앙이었던 나는 집과 교회의 테두리를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다. 지역적으로도 우리 교회 마을을 벗어나지 않고 이제껏 살고 있으니 그야말로 토박이 신앙의 삶이다. 유형적인 부분만 아니라 영적이고 신앙적인 부분에서도 그러하다. 장로 아버님, 권사 어머님의 가정은 늘 가정예배를 드렸고,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일관되었다. 아버님이신 안용기장로님은 잠언서나 4복음서를 읽게 하셨고, 정직하게 생활할 것을 가르치셨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머니 윤효순권사님은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며 남에게 베풀기를 즐기시며 무언의 가르침을 주셨다. 군인들이 교회에 왔을 때나 부흥회때 강사목사님이 계실 때 어머니와 교인들이 늘 집에서 음식접대를 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내가 10대때 교역자로 계셨던 이세용목사님을 모셨을 때다. 그 때는 사택도 없어서 이세용 담임목사님께서 우리 집에 모시고 있을 때가 있었다. 하나님의 종들을 집에서 모시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는데, 우리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섬겨드렸다. 때문에 내 생활은 청소년기에도 집과 교회에서 큰 탈 없이 지냈다.

 

이웃집들의 농사일이나 대소사는 물론이고 교회의 온갖 일에 참여하고 구경하면서 행복했다. 부모님들이 그저 이웃사람들과 교회성도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저렇게 살아가는 거구나’하면서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사춘기의 반항기도 없이 순종적으로 지나갔다. 삶의 가치관이나 좌우명도 성경말씀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마태복음 6장 33절은 내 삶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4남매의 막내인 나는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막내 누나는 한 때 우리 교회에서 교회학교 전도사로 섬기기도 하였다. 신앙적 대물림을 했듯이, 나는 아버님께서 해오시던 목장일까지 이어받아서 해왔었다. 소를 50마리까지 키우는 목장경영이 좋았다. 조물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세계, 가축들, 풀과 꽃과 나무들에서 그분의 사랑과 숨결을 느끼며 살았다. 건강하고 품질 좋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서 배합사료가 아닌 자가배합식 사료를 먹였다. 귀리, 호밀, 옥수수, 수단그래스 같은 식물들을 재배하여 소들을 키웠다. 재미있고 보람도 컸다. 신기한 것은 우리나라 기후에서도 수단그래스는 세 번까지 움을 베어 먹일 수 있었다. 자연에 충만한 생명력과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와 능력을 찬양하며 지냈다.

 

교회는 나의 삶에 가장 중요한 중심이다. 주인의식으로 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해 연말에는 교회에서 사례를 받는 관리집사 직분의 제의가 여러 번 있었다. 정중히 사양했다. 주님의 전에 머무는 일, 하나님나라의 사역을 감당하는데, 사례 받는 일은 신앙 양심상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안 보이는 데서 충실히 봉사하며 영적 기쁨을 누리고 싶다. 지금 나는 중고등부를 맡고 있다. 찬양대원이고 차량봉사도 즐겁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고마워’ 자나 깨나 섬김에 충실하려 노력하며 하늘기쁨으로 살고 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