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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일으켜주신 하나님!

 

최명수 집사

 

오늘도 새벽기도회에 다녀왔다. 심령을 밝혀주는 말씀과 즐거운 찬송, 그리고 기도생활. 비록 찬송이나 기도를 잘 할 줄은 모르지만, 내가 주체적으로 깨달은 바가 있어서 새벽기도시간에 아버지의 집에 와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의 꽃향기가 좋았다.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봄꽃 향기, 풀내음을 맡을 때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향기로 고민한다. 그만큼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나라를 향하는 순례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가꾸고 싶다. 아제까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시고 인도하신 은혜를 봐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충북 봉양에서 태어난 나는 제천에서 유명전자 대리점을 운영하다가 부도를 맞았다. 회생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망했다. 2004년 30만원을 갖고 고향을 떠나 이곳 파주로 왔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낙후된 지역이었고 정 붙일 데도 없었다. 돈이 없고 외롭다 보니 정신적으로 지쳤고 배도 많이 고팠다. 하루에 막걸리 너댓 병을 마셨고, 길거리 다닐 때는 다른 집에서 굽는 고기 냄새가 나를 힘들게 했다. 남들은 나를 실패자라며 비웃는 것 같았다. 몰려드는 열패감과 소외감, 대상을 알지 못하지만 치솟는 분노와 절망이 뒤엉켰다. 자살자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살아야 하겠기에 큰 자본이 들지 않는 부동산 사무실을 열었다. 지역에 경기가 없다보니 계약도 별로 없어서 생계가 위협받을 지경이었다. 여러모로 곤고할 때였다.

 

얼마나 가정형편이 어려웠으면 효심 지극한 큰딸이 “부모님 처지 생각해서 시집가겠다”고 했을까. 경사스런 일이지만 수중에 가진 게 없었다. 아내가 믿는 하나님께 마음속으로 빌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제가 아비로서 쪽 팔리지 않게 딱 3,000만 원만 주십시오!’ 그런데 기적같이 그 돈이 생겼다.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큰딸의 혼사를 기쁨으로 치렀다. 8년 전쯤 어느 날 아침인가 아내가 “여보, 우리도 저 언덕 위에 교회에 나갑시다”하는 아내의 조심스러운 제안이 있었고, 신기하게도 늘 우리를 아껴주시던 류광열 장로님이 “교회가자”며 전화하시고 권면해주셔서 삼성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첫 주에는 “손님 있어서 못나가요”하면서 핑계를 댔지만, 다음 주일 또 전화가 왔을 때는 밥먹다 말고 그 즉시로 주일아침에 교회로 향하게 되었다. 이왕 믿을 것 잘 믿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져서 아멘, 할렐루야, 예수, 찬양 등의 교회용어를 공부했다.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기뻤다. 지금 열심히 수고하시는 황명상집사, 그리고 신실한 주경진집사를 교회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우리는 함께 남선교회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땅에서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는 삶에 감사하며 살았다. 그런데, 큰 어려움이 닥쳤다. 막내딸이 희귀성 난치병인 루프스(림프)병에 걸린 것이다. 현대의학으로 못 고치는 병이라니, 캄캄했다. 하나님께 집중적인 기도로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의학상식으로는 결혼해도 산모와 아이가 모두 위험해져서 임신하면 안 된다는데, 딸은 임신을 했다. 나를 위해서는 울지 않았지만, 딸을 위해서는 연일 눈물의 기도가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주님께서는 이번에도 우리 가족을 살려주셨다. 응답하신 것이다. 무사히 출산했고 손주도 건강히 잘 자라났다. 치료하시는 라파엘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더욱 감사한 일은 내포리 뒷산에서 산삼 세 뿌리를 캤다. 그것이 어떻게 내 눈에 띄었을까.

 

하나님께서 큰 보너스로 주신 선물이었다. 물론 막내 딸네를 먹였다. 은혜 가운에 나를 일으켜 세우셨고 가족을 살려주신 하나님께 더 많은 충성을 하고 싶다. 하지만 세상적인 욕심은 없다.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구원받은 성도가 세상에 미련을 둘 이유가 없지 않은가. 손주들의 이름을 성경적 신앙에 바탕한 ‘온유’라고 지을 만큼 우리는 단란한 기독교가정이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다만 옛날 전자 대리점을 운영하던 시절, 내가 주선하여 노인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어려운 교회에 온갖 전자제품을 선물로 드렸던 것 같은, 확실한 충성의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 베드로처럼, 도마처럼, 나도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고백한다. 나는 교회에 헌신하고 가정에 충실한 일이 사람의 도리이며, 국가에도 충성하는 일이라 믿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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