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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

 

박순자집사

 

저는 1943년 전라도 광주에서 4남매의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19세때 파주로 시집와서 지금까지 살게 되었습니다. 시집생활은 계속 힘들고 몸저 누우신 시어머니를 12년간 수발하면서 동시에 공장과 식당에서 10여년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주 힘들었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면 꼼짝 못하고 누워계신 어머니만 두고 나오려니 내 맘도 편하질 않았습니다. ‘옆에서 시중들어야 하는데...’하는 마음의 부담을 가졌지만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5시면 일어나서 집안일을 해놓고, 10년 넘도록 누워계시는 시어머니께서 드릴 식사며, 간식꺼리 등을 준비해놓고 부랴부랴 출근해야만 했었습니다.

 

이렇게 눈코 뜰새 없이 아침을 시작해서 온종일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저녁 늦게 퇴근해서 들어가면 시어머니 대소변을 치워야지 씻겨드려야지 저녁준비해야지, 이런 저런 집안일 때문에 쉴 틈이 없었습니다. 12시 안에 잠을 자 본 일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스트레스를 웃음으로 푸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저는 항상 웃었으며 낙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일 안타까운 것은 슬하의 6남매를 많이 가르치지 못한 게 제일 가슴 아프다. 지금은 결혼도 하고 다들 자기 몫들을 하고 살기에 다행이지만, 가슴 한 쪽에는 항상 아쉬움이 남아있다.

 

제가 처음 교회에 나오게 된 것은 3년 전의 일입니다. 제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때 홍인순장로님, 송미영사모님, 김정순권사님이 자주 심방을 오셨습니다. 그때 큰 시누이의 딸, 저에게는 조카딸이 무당이어서 굿을 하라고 했습니다. 하루 하루 벌어먹고 살기 힘든 때에 400만원으로 굿을 할 수도 없는데, 퇴원해서도 계속 굿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 때 교회에서 저를 전도하려고 저희 집에 송미영사모님이 찾아왔을 때 이쪽으로 숨으면 이쪽으로 오시고, 저쪽으로 숨으면 저쪽으로 찾아오시어서 도무지 숨을 수가 없었습니다. 송미영사모님이 “하나님이 보내셨어요. 이제 가셔야해요.”라고 말씀하셔서, 교회에 따라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조카딸에게 “나는 교회 다니기때문에 굿은 안한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믿고 달라진 점은 마음이 그렇게 평안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교회 나오면서 큰 아들이 그 동안 받지 못했던 밀린 큰 돈을 사업 거래처에서 받아서 기뻤습니다. “엄마의 기도로 돈을 받았어요.”라는 소식을 듣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금의 기도제목은 오랜 지병으로 정신이 희미해지고 자신의 몸을 추스르지 못하는 남편문제와 큰 아들 귓병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 민영순씨와 저를 목사님 부부께서 지도해주셨습니다. 지금도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정도인데, 많이 잊어버려서 안타깝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사랑해주신 목사님과 교회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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