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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공동체안에서의 찾은 평안

 

김용현집사

 

저는 가난한 농사꾼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게 자랐습니다. 철저한 미신집안이어서 어릴 때에는 할머니와 엄마를 따라서 무당집에 자주 드나들고 굿하는 것도 많이 보았습니다. 어려서부터 넉넉지 못한 집안이라 남들이 다하는 공부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편물이라는 기술을 배워서 조금씩 벌어서 가정생활에 보태곤 하면서 처녀시절을 보냈습니다. 1976년 지금은 고인이 된 남편과 선을 보고서 두 달 만에 어른들의 권유로 결혼을 했습니다. 시댁은 11명이라는 대가족이었고 시댁에서 농사짓는 일을 함께 하며 살았습니다. 시할머니는 무당노릇도 했었다고 하더라구요. 이런 가정에서 교회를 나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댁에서 분가하여 이사를 갔는데, 마침 같은 날 이사온 세 집이 있었습니다. 우리집, 그리고 주충호 정노숙부부, 윗집 박상숙부부가 같은 날 이사를 한 동네 축현리로 왔던 것입니다. 시댁부모님이 미국으로 가시는 바람에 부모님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입니다.

 

뒷집에 주충호 정노숙 부부가 교회에 다니면서 날 자주 끌어들였다. 교회에 행사 있을 때나 부흥회 때 같이 갔었고 나도 모르게 마음이 끌리었다. 그 때 교회에 가서 만둣국도 만들고 설걷이도 하고 부흥회때 참석을 하고 많이 갔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설교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맺히곤 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제가 교회에 가지도 않았는데 심방도 오셨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남편이 싫어해서 교회도 못가고 마음으로만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사모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몸저 누워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하고 있을 때, 송미영사모님, 홍인순장로님과 전산악권사님이 여러 번 오셔서 기도해주셨습니다. 저는 마음의 평안함을 느끼며 남편의 병간호를 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외롭고 허전한 마음 살고 싶지 않은 생각도 들었고 약간의 우울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송미영사모님이 집에만 있지말고 교회에 나오라고 방문해주셨고 사모님 권유로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제가 첫 발걸음을 한것은 송구영신예배때 였습니다. 여러 번 와봐서 아는 얼굴들이 많아 낯설지 않았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제일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안장로님 사모님, 윤효순권사님께서 투병중이신 몸으로 교회에 오셨을 때, 왜 진작 오지 이제야 왔느냐고 제 손을 꼭 잡아 주셨을 때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사랑으로 맞아주신 모든 성도들에게 감사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랑으로 대해준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지금은 주방에서 봉사도 하고, 소망구역의 구역장으로 구역 식구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직분도 주시고 교회안에서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사랑하며 믿음안에서 살아가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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