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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회복의 선물

 

황금화 집사

 

나의 고향은 남쪽 끝 진도에서도 섬으로 더 들어가는 의신면 금갑리에 위치한 곳으로 마당 앞으로 비린한 바다 냄새와 찰싹찰싹하는 바닷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아버지는 바다에서 일하시며 만신(무당)을 불러와 진도 씻김굿을 자주 하셨고, 술 중독으로 날마다 고함 소리, 다툼 소리가 담을 넘어 이웃집에 민폐를 끼치는 우울한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삶은 돼지고기를 먹고 급체하여 몇 시간 동안 호흡할 수가 없어서 순간 무릎 꿇고 “하나님 저 좀 살려주세요. 그럼 교회 잘 다닐 게요”라며 간절히 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도를 마치자 답답했던 속이 시원해지며 숨을 시원하게 쉴 수 있었다. 하나님과의 그 약속이 생각날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지내오던 차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선배 언니들과 그룹 성경공부도 하고, 철야기도회, 수련회를 통해 찬양하며 기도했지만 도무지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았다. 악한 세력이 나의 눈을 보지 못하게, 귀를 듣지 못하게 하였지만 그럴수록 말씀과 기도를 사모함이 커져갔다. 말씀을 붙들고 미래의 남편을 위해, 그리고 독실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기를 소망하며 기도하였고, 온 가족이 손잡고 주님 앞에 예배드리는 가정을 꿈꾸었다. 선배 언니들과 서로 중보기도했던 시간이 얼마나 유익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중보기도 해주신 분들 덕분에 귀한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신랑은 미션스쿨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안 다니다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믿음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나와 결혼하기 몇 개월 전에 침례를 받고 한국으로 와서 결혼하여 현주, 은주, 재영의 귀한 세 자녀를 얻었다.

 

우리는 개척교회를 섬기던 중 쉽게 정착하지 못하고 이 교회 저 교회 기웃거리며 방황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던 중 삼성교회를 다녔던 큰 딸 현주의 권유로 지금의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한 주 두 주 나가서 예배드리며 교회 분위기를 살피니 목사님의 말씀이 정말로 은혜로워 모든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 같았다. 개척교회를 섬기면서 나의 연약함으로 인해 차갑고 갈급해졌던 심령이 말씀의 빛의 광선에 비추어 녹아내리면서 점점 회복되기 시작했다.

 

시내에 있는 교회들은 간혹 너무 적극적으로 다음 주에도 꼭 나오라며 부담을 주었지만 삼성교회는 그저 교회에 나와 감사하다는 말씀뿐 과한 부담을 주지 않았고 목사님, 사모님, 장로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이 편안하게 맞아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목사님이 공석이었을 땐 안 장로님, 류 장로님, 홍 장로님, 위 장로님, 전도사님이 하루도 빠지는 날 없이 새벽제단을 쌓으시며 교대로 말씀을 전해주셨다. 하나님이 예비해주신 목사님과 교회를 위하여, 성도와 나라를 위하여 솔선수범하여 기도하시는 모습에서 정말 삼성교회를 아끼고 사랑하고 봉사 헌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삼성교회 성도님들을 닮고 싶다는 마음과 도전을 받았다.

 

성경책만 들고 교회를 왔다 갔다 했던 우리 부부와 가족은 스포츠 친교와 전교인 수련회를 통하여 삼성교회의 가족이 되었고 모든 분들의 사랑과 봉사와 헌신에 흡수되면서 영적인 상처가 서서히 치료되고 막혔던 기도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새벽제단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부족한 우리에게 성도님들은 항상 칭찬을 아끼지 않고 격려하며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던 주님의 겸손과 섬김을 보여주셨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 헌신의 열매를 보여주셨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찬양으로 봉사를 할 수 있게 하시고 우리 자녀들을 유치부 교사로 봉사할 수 있게 하셔서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우리 가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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