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생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이성희 집사

 

나를 택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린다. 또한 우리 교회가 역사편찬을 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무엇보다 나를 택하여 이 역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는 어린 시절 박태선 장로님이 있는 전도관이라는 곳에 다닌 적이 있다. 그때는 과자를 준다는 이유로 교회에 다녔지만, 사실 예수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중학교를 미션스쿨로 가게 되면서 월요일마다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일주일에 두 시간씩 성경공부를 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교회도 잘 안 다니게 되었고 다시 예수님을 거의 잊고 살았다.

 

그러던 중 군대에 갔다 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금의 아내인 황금화 집사를 만나게 되었다. 아내는 주일날 데이트를 하게 되면 항상 오후에만 약속을 잡았다.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교회에 가는 것 같았다.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교회에서 성가대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교회에 가지 말고 아침부터 만나서 데이트하면 안 되겠느냐고 하자 나를 보고 “마귀야 물러가라”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있었는데 아내의 그 소리에 사람들이 다 쳐다봐서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나는 그때부터 아내를 만나기 위해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성경공부했던 약간의 지식으로 점수를 딸 수도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믿음생활을 하며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딸 현주를 임신했을 때도 양수리에 있는 기도원에 있다가 새벽에 배가 아프다고 해서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은혜로 순산을 했다. 그러다가 금촌에 있는 동문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집 앞에 있는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교회에서 우리 부부는 성가대도 하고 제자훈련도 받는 등 열심히 믿음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부목사님이 개척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따라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세 가정에서 개척을 하기 시작했다. 몇 가정이 안 되니 가족과 같은 교회생활이 그런대로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가 한 가정 한 가정 늘어서 어느덧 열 가정 정도가 되었다. 세 가정으로 시작한 개척교회가 열 가정 정도로 부흥하니 참 즐겁고 좋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도들과 목사와의 문제가 생겨 성도들이 하나씩 교회를 떠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처음에 시작한 세 가정만이 남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면서 나도 인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빈자리가 왜 그리 많고 큰지 전도도 힘들고 건물 임대료, 전기세, 사례비 등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나의 작은 믿음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웠고, 결국은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마음이 많이 아픈 결정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그때부터 주일이면 기도원을 찾아다니며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삼성교회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오전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체육행사를 한다기에 같이 모여 축구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다가 정착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 삼성교회에 와서 윤덕영 목사님과 류광렬 장로님, 홍인순 장로님, 위동구 장로님, 안용기 장로님 등 많은 믿음의 좋은 동역자들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삼성교회에서 믿음생활을 잘 하고 있어서 더욱 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또한 광성인쇄라는 사업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지금 나에게 바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를 사랑하셔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나를 언제나 생각하고 기도로 용기를 주시는 주위의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이다. 삼성교회 가족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항상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