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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식 목사님의 목회 회고의 글

 

1. 시무기간과 부임당시의 감회와 소감

 

삼성교회에서 목회 기간은 3년간입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개인적으로 군대생활 다음으로  가장 북쪽지역에서 보낸 목회생활이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고 부목사생활을 하다가 처음으로 담임목회를 했던 곳이 삼성교회 입니다. 2011년 지금의 시점에서 돌이켜 보니 10여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삼성교회에 부임하기 전에 서북노회 은평시찰 은광교회에서 5년간 부목사로 재직했습니다. 부목사로 재직하는 동안 몸은 도시교회에 있었지만 마음은 농촌(시골)교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막상 서울을 떠난다고 하니 서울 불광동에서 35km 떨어진 파주에 대한 거리감이 가족들에게는 아주 멀고 먼 타인의 땅처럼 여겨졌습니다. 갈등과 고민이 있었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평소 본인을 아껴주시던 은광교회 원로 장로님(송석렬)께서 소개해주시고 동행해 주셔서 삼성교회에서 3년간 시무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에 대한 개방정책으로 경의선 개통, 문산까지 연결되는 전철사업과 함께 개발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기대감이 느껴졌습니다. 교회 주변으로 주거지가 밀집될 것이라 예상했고 교회의 외형적 부흥은 당연하다 싶었으며 여러 사람들의 격려가 그런 분위기를 말해주었습니다.

 

2.시무당시 교회 현황과 지역분위기 그리고 시대상황

 

교회 건물은 가까운 곳에서나 먼곳에서나 누가 보더라도 교회의 경건미가 느껴지는 외관이었습니다. 높은 곳에 세워진 교회 마당에 서서 보면 금승리 일대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삼성교회는 전형적인 농촌교회였습니다.논과 밭이 펼쳐져있고, 지역은 개발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중소기업을 위한 공단이 조성되고 있었습니다. 정부당국에서는 북한과 활발한 교류가 확장되어 통일의 기운이 감돌고,월드컵 열기와 더불어 LG 필립스가 들어온다고 지역의 부동산경기가 꿈틀거렸습니다. 웅지세무대학이 들어서고 도로확장과 개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위한 풍성한 어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되어 목회자에게는 하나님나라 복음 확장을 위한 비젼으로 다가왔습니다.

 

3. 중점적인 목회철학과 방향 및 구체적인 사역

 

사람으로 오신 생명과 구원의 말씀이신 예수님의 정신을 현실 속에서 구현해 내는 것이 목회의 철학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하늘보좌를 보류하시고 세상속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처럼 이웃과 어울리며 더불어 함께하는 목회를 원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마을의 애경사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협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장학금을 지원하고,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와 농촌목회자로서 작은 텃밭을 가꾸며 건강한 먹거리를 길러 먹고 생태환경에 구체적으로 활동하고 싶어 지역교회의 목회자들과 농목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아울러 이웃교회와의 소통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강단교류를 계획하고 예산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모든 목회자들이 그러하듯이 본인 역시 말씀에 충실할뿐 아니라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교회의 오랜 전통인 새벽기도회,구역활동, 주일예배와 삼일기도회를 다른 것으로 대신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4. 기억에 남는 일과 사람들

 

목회는 목사가 하는 일이지만 장로님의 지원과 협력으로 자신감을 갖게 된다. 계획을 말씀드리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반대없이 일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판소리(문성모 박사님 고수), 영화상영, 프로젝트빔 설치, 이영무 목사(할렐루야축구단)초청 간증 등을 진행했으며, 교회가 설립된 이후 처음으로 창립기념에 즈음하여 경로잔치를 했습니다. 음식과 선물, 의료, 미용, 영정사진 촬영 봉사를 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행사를 통하여 처음으로 교회당에 들어오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직접적인 전도보다 일단은 문을 열고 소통하고 친밀감을 조성하고 싶었습니다. 성급하게 서두르다 소원해지기보다는 멀리 돌아가더라도 이웃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았습니다. 행사를 통해 처음으로 교회당에 들어오신 동네 어르신들이 예배당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초등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했으며, 지역의 군인들이 출석하여 함께 예배하였습니다. 군인들을 위한 특별한 사역이 없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김상순 집사님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외롭고, 아프고, 쓸쓸하신 집사님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명절이 되면 초대해서 같이 식사를 하고 위로했습니다. 몸에 병이 많아 모시고 병원에 다닌 일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지역의 특성상 다양한 사람들이 교회를 거쳐 갔습니다. 하지만 정착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수평이동하는 교인들로 인해 교회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류광열 장로님이 기둥처럼 교회를 안정감있게 지켜주셨습니다.

 

5. 받은 은혜와 간증

 

갈릴리 농원을 경영하신 류광열 장로님은 남다른 식견과 농촌의 미래상을 간파하시고 앞서가는 농업경영인 이셨습니다. 홍수로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내려앉는 아픔과 눈물의 시간을 과묵하게 기다리며 인고하시더니 하나님의 때에 도우심이 있어 기업을 다시 일으키셨다. 교회당 건축에서부터 교회 살림살이가 류장로님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삼성교회는 류장로님께서 하나님께 바친 하나의 업적이기도 하다.  갈릴리 농원은 육적으로 사람들의 건강을 보장하는 믿음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류장로님의 신앙고백이 묻어있는 '信天장어'는 장로님의 삶과 신앙의 중심을 보여주는 알맹이다. 본인이 직접 서각해서 선물해드린 '갈릴리농원' 이란 작품이 아직 식당에 걸려있는지 궁금하다. 류장로님의 덕스러움이라면 사회적인 상식과 경륜이 있어 그렇기도 하겠지만 먼저 되신 안용기장로님에 대한 배려와 안장로님의 속깊은 양보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당회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삼성교회와 류광열 장로님은 역할과 사명이 있어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와 노회의 지도자이십니다.

 

6. 지금 현재 시무처인 농촌교회로 가게 된 배경

 

과거에는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갔던 사회경제사적 배경이 있던 우리 사회는 교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농촌으로 복귀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싶었습니다. 탁상에서 설교짓는 사무적 차원을 넘어 노동하며 현장에서 온몸으로 농촌현실을 체험하며 삶에서 체득한 생생한 메시지를 얻고 싶었습니다. 농촌은 우주의 초점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세계의 구체적인 실물현장이 농약, 제초제, 갖가지 화학 비료로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건강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전하고 싶은 의욕과 함께 낮은 곳으로,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곳, 갈릴리 나사렛 같은 곳으로 내려가보자 라는 소원을 내게 주신 성령의 이끄심이 있어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동화교회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교회의 작은 논이 있어 직접 농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일하는 농촌 목사가 현실화 되었습니다. 삽, 낮들고 장화신고, 밀집모자 쓰고 동네 사람들과 일하고 돕고 청소하는 일에 동참하며 낮은 자세를 보였습니다. 교인들과 함께 손모내기를 하며 새참을 나눠먹으며 동네 사람들과 옛시절의 풍취를 느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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