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강, 갈3:10-24, 율법의 목적과 기능
존 스토트, "만일 율법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서는 아무도 복음을 귀하게 여길 수 없다. 마치 칠흙같은 밤하늘에서만 별빛이 빛나기 시작하듯이, 죄와 심판이라는 율법의 어두운 배경을 통해서만 복음이 빛나게 되는 것이다."
율법이 할 수 없는 것.
생명을 줄 수 없다. 구원을 줄 수 없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를 줄 수 없다. 그러면 왜 율법이 주어졌나? 율법이 무슨 소용이냐?
■ 율법은 우리에게 육체의 무익함, 연약함, 무능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주어졌다.
육체의 주장: "내가 내 인생의 권위이다. 결정은 내가 해! 나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 지 내가 다 알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나에게 딴 소리 하지마." 예) 이게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의 마음태도였다. "나는 내가 원하면 이 과일을 먹을 수 있어." # 바울의 주장: 율법이 주어진 이유는, 육체의 핵심은 죄악되며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1.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했다.
3:10절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
2.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
"율법의 주된 욧점은 인간을 더 낫게 만드는 게 아니라 더 심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율법은 인간이 죄인임을 보여준다. 인간이 죄인이라는 지식을 가질 때, 인간은 더 겸손하게 되고, 경악하고 상처입고 깨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필요로 하고 갈망하게 된다." (마르틴 루터).
율법 아래에서 저주받은 채로 있다. 모두가 죄 아래에 있다. 율법은 모든 사람에게 저주를 선언한다. 심지어 율법에 순종하려고 노력한 자들도 마찬가지다. 완벽하게 순종하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 것이다.
무기력해지는가? 이제는 글렀다는 생각이 드나? 그게 핵심이다. 그게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이다. 우리가 스스로 옳다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깨달으려고 율법이 필요하다.
율법의 저주는 우리를 움추리게 한다. 저주, 멸망, 진노, 불순종, 무익함, 정죄, 아무도 이 말을 안하면, 우리가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괜찮지가 않다. 우리는 절실히 우리를 (불순종, 무익함, 육체의 반항의 결과인) 저주와 정죄와 진노에서 구원할 구세주가 필요하다.
22절. "율법 아래에서 죄의 포로가 되었다. 갇혀서 나갈 길이 없다.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는 끊을 수 없이 사슬에 매였다.
율법이 있어야 하는 이유
1. 죄를 깨닫는다,
2. 그리스도의 은혜, 오직 믿음의 필요성을 안다,
3.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에 감사하고 변화된 삶을 살게 한다. /죄의 심각성과 은혜의 무한함을 안다. 은혜 안에서 감사하고 감격하게 된다. 율법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원리를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벌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율법=몽학선생, 율법 아래에 있지 않지만, 이제는 성숙하여 율법의 정신을 내재화하여 생활한다. *믿는 사람에게는 더이상 율법이 필요없는가? 아니다. 몽학선생은 떠났지만, 어른이 되면 이러한 율법의 정신을 내면화하여서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것과 같다.
24절,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리고, 사모하고, 필요로 한다.
만일 우리 죄가 얼마나 큰지 알지 못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진 빚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 못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용서해주신 죄사함의 은혜, 엄청난 빚을 탕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가 없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며, 구제불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은혜는 결코 나를 변화시킬 수 없는 값싼 은혜이다. 그러므로 은혜받은 자의 삶의 기본 감정은 감사와 기쁨이다. 이게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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