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질문: 바울이 14년 만에 예루살렘의 기둥같은 유력한 지도자를 만났을 때,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이방인에게 전한 바울의 복음과 사역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였나?(2:9) 예루살렘 지도자들과 바울에게 부탁한 것은 무엇인가?(2:10)
교회 일치의 증거 3가지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2:10)
1. 문화적 인종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2:4)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복음에는 차별이 없다. 롬1:16. 오직 예수 외에 다른 조건을 내세워서는 안된다. 예) 동성애자도 구원의 대상이다. 예) 방언 받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조건들을 내세워서 배척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2. 우리는 서로 소명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일치와 다양성] 1) 복음 안에서 우리는 동일하게 죄인이다. 2) 복음 안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소명과 은사를 가지고 있다. (2:7) 이방인의 사도 바울 vs. 유대인의 사도 베드로. 같은 복음을 믿는다고 똑같이 획일적인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르다. 서로 다른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복음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가 있다.
복음을 훼손하는 보수주의(under-adapt):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외에 다른 것을 절대적으로 강요하는 행동은 복음적이지 않다. (옷, 행동 등.)
복음을 훼손하는 자유주의(over-adapt):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복음에서 '공격적이고 배타적'이라고 느끼는 부분을 제거하는 것은 복음적이지 않다.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거나(under-adapt), 지나치게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복음의 내용을 부정하는 것은 둘 다 복음을 "잃어버리는" 행위이다.
1. 율법주의자: "진짜 그리스도인은 항상 이렇게 행동한다." (여기엔(자유)(기쁨)이 없다.)
2. 자유주의자는 모든 종교가 다 진리라며 예수님께서 유일한 구원자 되심을 부인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더 중시한다. (여기에는 ( 진리 )가 없다.)
3. 그리스도인의 일치는 "계속해서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2:10)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것이 왜 기독교의 일치에 가장 근본적인가?
예루살렘 지역에 기근이 들었다. 예루살렘은 영적인 유익을 이방인에게 나누고, 이방인은 물질적인 도움을 예루살렘 교회에 영적인 빚을 갚는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진실로 아는 그리스도인은 어려운 사람을 힘써 돕는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우리의 진실된 믿음을 가난한 자, 피난민, 아픈 사람 그리고 죄수 등을 우리가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고 심판(마25장 최후의 심판, 영생과 영벌)
고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진실한 믿음은 자비의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음의 말뿐만 아니라, 자비를 나타내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바른 전도이다.
교회는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행 6장, 7집사를 세우신 이유, 약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의 사역을 하기 위해서이다.) 교회는 가난한 자들을 돌봄을 통해서, 돌보는 봉사 안에서 하나 됨을 체험한다.
적용 질문
1. 교회들이 복음을 너무 중요시해서 문화와 상황에 관심이 없지는 않은가?
2. 교회들이 일치를 너무 중요시해서 복음의 진리를 타협하지는 않는가?
3. 교회나 개인이 연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어떻게 돌보는 것이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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