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목표:
- 유대교와 기독교의 진리의 차이에 대하여 이해한다.
- 사도 바울이 왜 이방인 디도를 예루살렘에 데리고 갔는지를 이해한다.
- [그리스도인의 자유] 타협할 수도 없고, 양보할 수도 없는 바른 복음의 자유를 누리자
1.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본문 1절과 2절입니다.
“십 사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누구와 함께 누구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까? (1절)
바나바의 뜻은 무엇이며, 원래 이름은 무엇입니까?
디도는 어떤 사람입니까?
예루살렘의 유명한 자들이란 누구이며(3인), 만나서 무엇을 했습니까? (2절)
왜 바울은 유명한 자들에게 공개적으로가 아닌 ‘사사로이’ 다시 말해서 개인적으로 바울의 복음을 제출을 하였을까요?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4-5절)
참된 교회의 일치의 문제
복음은? 오직 예수, 오직 믿음의 복음은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반대자들의 주장: 모든 유대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인가에 대한 것이지,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디도를 받아 준 것은 바울의 복음과 바울의 사역을 받아준 것을 의미한다.
복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쩔 수 없는 의무감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기쁨으로 모든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동기는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순종하는 것이 동기입니다. 그러나 기쁨 없이 다른 사람들의 비난이 두려워서 할 때 그 종교 행위는 더 그의 마음속에서 모든 기쁨을 다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구원의 감격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리 작은 것들이라 하더라도 기쁨으로 하고 자기가 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중심이 변화되지 않은 자들은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자들이 이런 것을 비난하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중요한 자들이 세상적인 기준을 강요할 때 그때 우리의 참된 자유는 위협받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왜냐하면 이들은(거짓 형제들은) 복음은 너무나도 흔하다고 생각해서 중요하지 않게 생각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라는 것 말이야. 우리가 늘 듣는 것 아니야? 우리는 좀 더 새로운 것을 듣고 싶어.”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장 행복한 것이 복음을 항상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복된 것은 이 복음의 진리가 늘 충만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의 진리가 충만하지 않다는 것은 바로 사탄의 무서운 노예화 공작이 시작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가 희미해지면서부터 사탄의 공격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소홀히 할 때 한꺼번에 노예로 잡혀가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복음은 자유를 준다.
1. 복음은 문화적인 자유를 준다. 끊임없는 규칙들로부터 자유이다. "영화관에 가지 마라, 술마시지 마라, 옷은 이렇게 입어라 등." 이런 것들은 감사함으로 깨달음으로 하지 않으면 종교행위로 그친다. <문화적으로 유대교가 되어라!> 거짓 형제들의 주장. "문화적으로 nice &proper를 강조함.
2. 복음은 정서적인 자유를 준다. 종교생활은 끊임없은 죄책감과 불안감을 일으킨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는 감사함과 자유함으로 순종하는 자들이다.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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