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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명이야기

 

윤덕영목사

 

2002년 10월 22일 평양노회소속으로 서문교회(담임목사 손달익)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목사안수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기쁘고 감사하고 설레는 마음이었으나, 안수를 앞에 둔 나는 두렵고 혼란스럽다. 목사는 내가 오랫동안 되기를 희망해왔었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비판해오고 판단해오던 대상이 아니던가. 이제 내가 그 자리에 선다고 하니 두려워진 것이다. 아버지가 목사여서 목사직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고 또 목회현장을 보면서 자랐다.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목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목회자에 대하여 나 자신과 타인들이 기대하는 바가 높고, 그와 함께 져야할지도 모르는 비판의 짐을 지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군대 생활 동안에 성경적 상담을 통한 치유사역에 쓰임받고 싶은 비전이 생겼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어느 목사님과 진로상담을 하는데, 성경적 상담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신학교에 가야되겠네”라는 짧은 답변을 하셔서 무성의하다고 느껴 다소 놀라워했지만, 신중히 생각하고 준비하여 94년도에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그 목사님의 조언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학교를 가게 된 동기는 목사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하고 나 스스로가 온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신학교에서의 생활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신학수업은 재미있었고, 다양한 소명을 가진 사람들과 한 지붕 식구처럼 함께 사귀고 예배드리는 것이 참 좋았다. 동료들과의 우정과 신뢰는 나의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독서와 현장을 통해서 삶과 신앙에 좋은 안내자가 되는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신학대학원은 목회자를 양성하는 곳이긴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목회자가 되겠다는 내적인 확신이나 소명은 뚜렷하지 않았다.

 

목회자가 되겠다는 부르심을 깨닫게 된 것은 어느 선생님과의 만남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신학교 때 미국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친 후, 임상과 상담을 제대로 경험해 보고 싶다는 목마름이 있어서, 테네시 주의 한 병원에서 목회임상교육을 받을 때 신뢰할 만한 한 선생님을 만났다. 그 분은 그 병원의 원목이셨는데, 말을 아끼고 분별력이 있으며 정곡을 찌르는 질문으로 고민하는 문제의 핵심을 짚어주시곤 하셨다. 어느 날 그분과 차안에서 나눈 짧은 대화가 안수를 받게 된 지금의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준다. “사람들은 진리가 주는 자유보다는 빵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진리로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기 보다는(요8:32) 세상의 물질적인 축복과 성공을 나누어주며 교회의 권위에 굴종하게 만들고 있고 때로는 사람을 우매하게 만듭니다.” 목회자의 길을 가는데 대한 은근한 거부감과 회의적인 느낌을 슬쩍 내비쳤을 때, “덕영! 자네가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는 목회를 하면 되지 않은가.” 그런 목회는 너무 이상적이고 말씀처럼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비전에 맞는 교회를 찾기가 힘들어요.”라고 체념조로 말했다. “그럼 자네가 개척하면 되지 않는가.”하셨다. “개척이라고요?” 정말로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말이라 놀라서 되물었다. “그래 자네가 그 길을 가면 뜻을 같이하는 몇 몇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야.”하시면서 선생님께서 나의 첫 번째 후원자가 되어주겠다고 격려해주셨다. 목회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는 풋내기 신학생이었지만, 그 대화를 통하여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는 이 흥분되는 비전에 나의 전부를 드리고 싶은 열정이 은은하게 생겨났고, 개척자의 각오로 이 사역에 도전해보고 싶은 용기와 설레임이 마음에서 샘솟았다. 이 때 내면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목회의 길로 부르시는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되었다:‘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 되고 또 다른 사람을 자유하게 하는 사람이 되라.’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기에 목회자의 길을 가다가 때로는 넘어지겠지만, 목사로서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한 완전히 넘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잠24:16). 목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분명하다.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 안에 거하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작은 일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살며 사람들에 대하여 진실하고 성실한 것이다. 인간적인 업적보다는 나의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열매를 맺기를 소망한다.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심을 고백한다.“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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