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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훈전도사 취재

 

1. 군생활한 기간이 어떻게 되나요? 그 때 삼성교회 출석한 시기는? 그 당시 담임목사, 기억나는 교회사람들은 누구입니까?

1999년 6월에 자유로 철책부대로 자대 배치를 받고 6개월간 GOP근무를 서다가 2000년 1월에 금승리 예비대대 생활하던 중 대대장님께서 삼성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지시하셔서 중대 군종이었기에 중대원들과 함께 삼성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담임목사는 유광웅목사님이셨고요, 기억나는 사람은 참 많은데 이름이 기억나지가 않네요. 특별히 유영안(담임목사님 따님) 자매와 찬양사역하던 자매와 학생부들이 그 당시 10여명 정도 됬었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요.

 

2. 삼성교회와 군부대와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나는 대로 말씀해주세요.

 

▣ 소속부대는 어디입니까?

당시 101여단 3대대 10중대입니다. 지금은 101여단이 없어지고 1사단에 예편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 주변에 몇 개의 군부대가 삼성교회에 참석하였나요?

9중대, 10중대, 11중대, 12중대가 참석했습니다.

 

▣ 근무상황에 따라서 삼성교회에 교대로 군인들이 나왔던 상황을 말씀해주세요.

당시 101여단은 4개대대로 편성되어 있는데, 1개 대대씩 교대로 6개월간 GOP근무를 섰습니다. 1개 대대가 GOP근무를 서면 3개 대대는 예비대대에서 나머지 군 생활을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3대대가 예비대대로 옮긴 후 전역하기 전까지 삼성교회에서 신앙생활을 보냈습니다.

 

▣ 군인들이 교회학교 교사, 저녁예배 등을 섬긴 기억들을 말씀해주세요. 군대 지휘관의 협조해 준 예를 말씀해주세요. (주일날 군인들이 줄맞추어 왔다갔다고 하는데, 예배만 드리고 갔나요? 아니면 귀대를 자유롭게 했나요?)

 

주일이 되면 부대에서 종교 행사 자들이 각 종교로 모이게 됩니다.

기독교를 택한 군인들이 종교행사를 가기 위해 줄을 맞추어 교회로 향합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마치면 군종병들을 제외하고는 부대로 복귀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당시 교회에서 식사를 제공했던 걸로 압니다. 그래서 사제 밥을 먹고 싶어 오는 장병들이 많았습니다.

군종병들은 교회에서 교사로, 찬양사역으로 봉사했고요, 여름성경학교 때는 군종병들이 와서 도와드렸습니다.

기억나는 여자 집사님(윤목사 설명: 현재, 박상숙권사)인데 봉고차로 교회에서 차량운행을 했고요, 아마도 교회학교 부장선생님이었던 같아요. 두 딸이 있고요.

그 집사님 저희 군종병들을 참 잘 챙겨주셨어요.

저녁예배는 원래 허락되지 않았지만, 10중대는 저녁예배가 허락되어서 오랜 기간은 가지 못했지만 통제로 인해 잠시 다녔습니다.

 

▣ 삼성교회 출석시기에 추억을 자유롭게 말씀해주세요. (담임목사님, 교회학교 교사와 관계 등.)

 

삼성교회에서 예배를 출석 할 당시 군 장병들에게는 엄청난 이슈였습니다.

가장 큰 건 교회에서 밥을 제공하는 것과, 유 목사님의 따님과 찬양 사역하던 자매(윤목사설명: 박순미?)였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고 오가던 길에서 장병들은 늘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군종병들은 두 자매에게 프로포즈 아닌 프로포즈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잘 보이기 위해서 없는 머리를 다듬고, 휴가 나갈 때 입는 1계장을 입고 난리도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프로포즈에 성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10중대원 군종병들은 다른 중대와 다르게 교회에서 참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앞으로 미래상을 설계하기도 하고, 서로의 꿈을 중보하고, 함께 격려하면서 너무나 유익하게 군생활을 보냈습니다.

 

전역 후에는 다음 카페에 "창문" 이라는 클럽이 생겨 서로 간의 삶의 공유하고, 정모를 가져서 서로 만나 식사도 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유영안 자매의 수고로 이루어졌다는 거에요.

그리고 교회학교 아이들은 물론이고 청소년부 친구들도 유영안 자매를 참 잘 따랐어요.

그 당시 아이들과 10중대 군종병들과 유영안 자매에게 아주 좋은 추억이 있죠.

 

여기까지입니다.

더 궁금하신 사항 있으면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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