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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교회의 유래(자료제공, 우종덕목사)

 

이곳에 복음의 씨가 떨어지기는 1957년 5월초부터 윤기채 집사님 댁에서 문지리(진곡동) 웃말 위치에서 

기도회 처로 모이고(대동 교회 구자경 집사, 윤갑득 장로가 인도) 

6월 중순부터는 주일학교 탄생하고 장년 및 주일학생은 전인철 집사 인도(삼성국교 교사) 

이때에 예장과 기장과의 대립상태에서 결국 예장통합으로 되다.

 

동년 9월 중순부터 현 위치에서 굴을 파고 지붕 천막 안에서 예배 중 

역시 전인철 집사와 모 해병군인 손 중사가 예배 인도하다.

다음해 봄에 김영은 전도사가 새로 파송되었고 

여름성경학교에는 주봉택 군인이 어린이 인도 중 장년, 유년 합 240명까지 집회 성황을 이루었다.

동년 가을부터는 목재 건물에 천막 지붕이었다.

 

1959년 7월에 김영은 전도사가 본 교회 사면하고...... 

이어서 2차에 걸쳐 전마태 선교사 및 감의도 선교사가 본 교회를 시찰하다.

이때 본 교회의 당회장은 차경성 목사이다.

 

교회 임원은 윤숙현 집사, 안용기 집사, 우종덕 집사였다.

전인철 집사는 타곳으로, 윤기채 집사는 이미 충북 단양으로 이사하였다.

1959년 6월에 우종덕 집사 군 입대하고 1961년에 김세의 집사 이사하고 교우는 얼마 안되는 숫자였다. 

그중 예배 인도는 차경성 목사의 누님이 본 교회 여 전도사로 시무 중 교회에 덕을 세우기 보다는 아름답지 못한 일이 발생하여 1962년 초에 본 교회를 사면하고 이어서 군인 목정규 선생이 인도하고 

 

1962년 3월 2일 우종덕 집사가 육군을 제대하면서 경기노회에서(현서울노회) 1962년 5월 15일 전도사로 인허받고 시무하다.

교회 천막지붕은 1962년 10월 함석으로 대치하다. 이것은 기독교연합회 김덕수 목사님과 박대위 선교사님의 돕는 힘으로 되었다.

한편 그 당시에 교회 강대상과 화단에 기념식수는 1963년 문지리 주재포병부대 구자성 대위 포대장님의 기념물이기도했다. 당시의 주일학생이 지금 목사, 장로, 권사, 사모, 집사로 배출됨을 생각하면 하나님 앞에 감사할 뿐이다.

 

-자료제공 우종덕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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