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진, <오래된 소원> (2015년 홍성사)
이 책이 우리 부부에게 얼마나 내게 큰 감동을 주었는지, 아내는 내게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하라고 강권하면서 세계에 소개시켜야할 책이라고 하였다. 내 영어실력을 상당히 대단하게 평가하는 아내의 말이 부담이 되었으나, 그 만큼 이 책은 가슴벅찬 우리 한 민족의 이야기이고 분단된 남북한의 현실을 보여주는 생생한 현대사 이야기이다. 여기서 오래된 소원은 '통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주인공 정현숙(84세, 이 책을 기록할 당시)할머니가 북한내에 살고 있는 믿음의 그루터기이기 때문이다. 보통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의 기행문이나 내부 체험 사실, 또는 탈북자의 내부고발과 폭로같은 것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책은 북한선교를하는 강석진 선교사가 중국 단동에서 극적으로 만난 북한의 나오미, 정현숙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정현숙 할머니는 일평생 북한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정현숙 할머니의 증언을 녹음하고 일부 친히 기록한 자료를 토대로 극동방송에 연속물로 방송하였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 나온 것이다. 이 책을 화장실 서재에 2년쯤 묵혀두다가 이번 주에 무심코 책을 들었고, 단숨에 읽게 된 책이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무슨 눈물이었을까? 또 책을 읽으면서 눈시울을 붉힌 적이 언제였던가? 까마득하다. 그 동안 철학과 신학 사상에 관한 책들을 많이 접했던 게 사실이다.
강석진 선교사는 남한산성에 계신 당시 90세가 넘으신 한경직 목사님을 찾아가 선교보고를 하며 인사를 드린다. 한경직 목사님은 신의주 제2교회를 섬기시다가 피난나오셨다. 목사안수는 중국 단동(안동)에서 받으셨다고 한다. 같은 노회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신의주에는 제1교회부터 제7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부터 한경직 목사님은 쭉 말씀을 해주셨다. 신의주 제2교회에는 고아원이 있었는데 그 때 장애가 있는 총명한 여자아이를 피난올 때 데려오려고 했으나 그 아이가 피난하기에는 몸이 불편해서 데려오지 못했는데, 그 아이를 꼭 찾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강선교사에게 하시는 것이었다. 거의 현실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지금쯤 60대가 되었을 그 고아소녀를 찾아보겠노라고 대답하고 중국에서 북한선교를 하면서 북한의 믿음의 사람들에 대하여 더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게 되었다.
그 때 중국 단동에서 84세의 정현숙 할머니와 그의 60대 아들을 만나게 된다. 이 할머니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북한에서는 60세 이상의 노인에게는 비자를 내주지 않는데, 정현숙 할머니는 어찌된 영문인지 3개월 비자를 받고 중국에 나와 있었다. 그녀는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난 3대째 기독교 집안이었다. 동생들 때문에 집안 일을 하고 공부는 동생들에게 양보해야 했으므로 초등학교도 못갔을 때, 교회에서 들려오는 풍금소리가 천상의 소리같이 들렸다. 풍금을 배우고 싶어서 음악교사의 집을 기웃거리다가 극적으로 초등학교에 가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 당시 교회학교와 초등학교생활을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꿈에 부풀어 있을 때다. 놀랍게도 정현숙 학생은 총명하고 성실했다. 가난한 형편임에도 이북 지방에서 최고 명문여고인 호수돈여고를 수석입학, 수석졸업하게 되었다. 이 때 피아노를 가르쳐준 사감 전선애 선생님은 후에 민족지도자 조만식 장로와 결혼하게 된 사람이었다. 정현숙은 일본 우에노 음학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유학생활을 접고 조국에 돌아와 이화여전에서 피아노를 수학하며 독일 유학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 때 모윤숙도 만났는데, 모윤숙은 그의 오빠와 연결시켜줄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가세가 기울어 집에 가게 되었는데 원치 않는 강제 혼인을 하게 되었다. 1년 반의 결혼생활도 잠시, 큰 아들을 낳고 둘째 아들을 임신한 상황에서 공산세력을 피해 남편은 남으로 피했는데, 그게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이야.
이후로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며, 평양교향악단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활약하며 한 때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재혼을 강요하는 공산당 간부의 요청을 매몰차게 뿌리치면서,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이 뒤따랐다. 10년 동안 감옥에 억울하게 가게 되었고, 두 아들들의 소식도 모르고 지냈다. 출소한 후 수소문하여 만난 두 아들은 탄광생활을 하고 있었다. 탄광에서 두 아들을 만났을 때 온갖 시련과 고난도 있고 잠시 천국같은 생활같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인생이 어찌 이리도 기구할 수 있을까. 아니 이것은 한반도의 비극이기도 하다. 놀라운 사실은 아들들에게도 하나님를 믿는 신앙을 말할 수 없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간절한 기도와 소원으로 84세의 정현숙 할머니는 남쪽으로 간 남편의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 남편의 가족들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으로 60대 아들을 데리고 3개월 비자를 받아서 북한에서 중국 단동으로 나온 것이었다. 중국에서 3개월 있는 동안에 위협을 무릎서고 아들을 데리고 일주일에 2차례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아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남한에서 강석진 선교사가 찾아낸 남편의 배다른 자녀들을 중국 단동에서 3일간 만나면서 놀라운 위로와 회복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정현숙 할머니이 이토록 남한의 이산가족을, 배다른 남편의 자손들을 만나고자 했던 이유는, 남편이 불신자였는데 60대 이후 재혼을 하여 장로가 되고 자수성가한 사업가가 되어서 교회도 세우고, 목사 사위도 보고, 믿음의 가문을 이루었다고 하니, 정현숙 할머니는 열악한 탄광생활을 하지만 아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물려주고자 저들을 수소문하여 만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3개월 중국에 체류하고 3일간 극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후, 60대 북한의 그 아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다시 북한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북한에 남이 있을 '믿음의 그루터기'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아무리 한국에 있는 교회에 문제들이 많다고 하지만, 북한의 성장하는 교회의 목회자들이 피난하고, 갑자기 제거되고,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지경이 되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겪으면서, 나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의 교회들이 여전히 문제들이 있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예배드리고 있는 이 현실 하나만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현숙 할머니는 54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아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밝혔고, 그 신앙을 아들에게 물려준 것을 생각할 때,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 믿음을 온전히 지켜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북녘의 나오미 정현숙 할머니, 그는 조선에 태어난 것이 저주요 형벌이라고 하나님께 항변하기도 했지만 기도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인내로 믿음을 지켰으며 마침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은혜로우시다며 피아노를 반주하며 찬송하기를 기뻐하였다. 그 신앙이 감동적이다. 그의 찬송 가사는 하나 하나 간절한 기도였다!
(1)내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되신 주
저본향집을 향해 가는길 비추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걸음 씩 늘인도 하소서
(2)이전에 방탕하게 지낼때 교만하여
맘대로 고집하던 이 죄인 사하소서
내 지은죄 다 기억마시고
주 뜻대로 늘 주장 하소서
(3)이전에 나를 인도 하신주 장래에도
내 앞에 험산 중령 만날때 도우소서
밤지나고 저 밝은 아침에
기쁨으로 내 주를 만나리 아멘
강석진의 또 다른 책, <북녘, 남은 자들의 외침>이란 책도 주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