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루이스의 <순례자의 귀향> 부제: 기독교, 이성과 낭만주의에 대한 알레고리적 옹호서
세계를 이해하는 두 가지 열쇠는 전쟁과 여행이다.
호머의 작품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호딧세이>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 이야기이다.
기독교 변증가 존 번연의 유명한 <천로역정> Pilgrim's Progress은 천국으로 향하는 순례자의 신앙의 여행이야기이고, <거룩한 전쟁> Holy War는 신자가 일생 동안에 겪는 영적인 전쟁 이야기이다. 타락, 거듭남, 주님과 동행, 사단의 시험, 신앙적인 방황, 마음의 평안, 최후의 승리 등을 다루고 있다.
C.S. 루이스는 회심하여 2주 동안 <순례자의 귀향>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존 번연의 현대판이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 Pilgrim's Progress가 천국으로 가는 여행이라면, 루이스의 <순례자의 귀향> Pilgrim's Regress은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하는 믿음의 여행이다. 영어 제목을 주목해보면 <순례자의 귀향>Pilgrim's Regress 이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와 같이 이야기 방식으로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C.S. 루이스는 3차에 걸치는 회심을 경험했다. 그의 회심의 계기는 논리의 회심이 아니라, 상상력의 회심이었다. 그는 영문학자이자 신화학자로서, 기독교 신앙에 눈을 뜨는데 그의 풍성한 상상력의 방향을 기독교 신앙에 돌리게 된다. 여기서 '상상력'이라고 할 때,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뜻이 아니라, 현실을 새롭게 본다는 의미에서의 상상력을 말한다. 그의 사상은 이성과 감정의 문제를 다룬다. 이성으로만 치우치거나, 감성으로만 치우치는 결과는 '황무지'이다.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 '신앙'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이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이런 풍부한 메타포 때문인데, 최근 그의 회심에 관심을 가지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루이스의 저서 <예기치 않은 기쁨>이 그의 회심을 주제로 다루었다면, <순례자의 귀향>은 다른 접근으로 그의 회심을 다루고 있다. <순례자의 귀향>의 글쓰기 방식이 흥미롭다. 종교개혁 당시에 루터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인문학자, 당시 타락한 기독교 사회를 비판했던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의 풍자 형식을 루이스가 사용하고 있다. 나의 신학적 회심에 큰 영향을 주었던 Peter Kreeft교수의 <소크라테스, 예수를 만나다>Socratges Meets Jesus 이 책도 역시 상상력을 이용한 대화의 형식으로 진리를 드러내는 책이었다. 이 책들의 공통점은 이성적, 논리적 전개가 아니라, 이성의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존 번연의 <천로역정> <거룩한 전쟁>과 더불어, 루이스의 <순례자의 귀향>에 무한한 가치와 애정을 가지게 된다.
이성은 그 시대를 풍미하는 현혹하는 철학을 분별하는데 필요하며, 감성이 없는 이성과 신앙은 메마르므로 감성도 중요한 요소이다. 어디까지나 이성과 감성은 신앙이라는 것에 의해서만 균형을 이루고 제 역할을 하게 된다. <순례자의 귀향>에 등장하는 '교회'(Kirk)라는 노파는 볼품없고 옷차림도 남루한 노파이다. 하나님의 며느리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지만, 이 땅에서는 볼품이 없어 보인다. '이성'이 낭떠러지 앞에 도착하는데, 그 낭떠러지를 건너갈 도움을 주는 것이 '교회'였다. 교회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그 가치가 드러난다.
신앙의 순례의 목적은,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돌아오기 위함이다. 이것이 순례자의 귀향의 결론이다.
이성과 신앙, 의심과 믿음의 문제. 믿음의 반대는 의심이 아니라 두려움이라고 했다. 아니, 믿음의 반대는 의심이 아니라 불순종이다. 의지의 반항이다. 루이스는 프로이트에 심취했고 영국이 1940년 독일의 Blitz를 경험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이성과 낭만주의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무신론자는 모순의 세계에 산다. 세계를 자기 동의 없이 창조하고 이 땅에 보낸 신에게 화를 낸다.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순례자의 귀향>을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