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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의 '죽음준비교육', 죽음의 역설을 가르쳐주다.

 

필자가 삼성교회의 1대 위임목사로 위임식을 할 때 정성진 목사(거룩한빛 광성교회)께서 설교해주셨다.

설교제목은 "죽어야 산다"였다. 그 제목을 듣는 순간, 내 안에 꿈틀거리고 있던 세속적인 욕망들이 일제히

거부를 하며 한 숨을 쉬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영은 나를 순결하고 정결하며 능력있고 겸손하게 해주었다.

 

누구나 '죽음'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쁠 수 있다. 더구나 '죽음 준비'라는 말을 들으면 '아니 살기도 바쁜데

무슨 죽음 준비냐'며 반박할 수도 있다. 죽음은 음산하고 어둡고 불확실해서 생각하기도 싫다. 그러나 바로 그 죽음을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는데서 개인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사회는 무질서해 지고 윤리는 실종되어 가고 삭막하게 된 것이다.

 

'죽음의 역설'이라는 말이 있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산다는 것이다. 살려고만 하면 길이 보이지 않고 자꾸 삶이 도망가지만, 죽음을 묵상하면 길이 보이며 관계가 회복되고 삶이 내게 가까이 다가오게 된다. 종교의 문제는 사실 죽음 준비이다.

어떻게 죽느냐를 결정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답이 보이게 된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경이롭고 신비롭고

순간 순간이 충만한 것, 이게 죽음의 역설이다.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의 한계상황에서 시작한다.

즉 나의 절망, 죽음, 불안을 직면하고 피하지 않을 때 거기에 소망의 빛이 보인다.

실존주의 철학 이후에, '죽음학'이 나왔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학문이다.

 

죽음 준비가 안되어서, 자살 문제가 생긴다.

죽음을 직면하지 않아서 노인과 환자들의 삶이 무가치하게 여겨지게 된다.

죽음을 준비하면, 노년이 풍요로울 수 있고 의미있을 수 있다. 사회의 소외된 곳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죽음 준비가 되지 않고는 온통 이 사회는 경쟁과 이기심 뿐이고,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요즘 종교가 욕을 먹는 것은 죽음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떤 유언을 남기고자 하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살 동안에 무엇을 할 것인가? 묘비명에 무엇을 새길 것인가?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은 잘 사는 길이다.

잘 사는 것은 잘 죽는 것이다

 

죽음준비학교_유경의.jpg

이외에도 죽음학강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등의 책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자살은 결코 혼자 죽는 게 아니다. 나 하나 죽으면 그만이지, 죽어버리면 되지, 하는 마음처럼 단순하게 끝나는 게 절대 아니다. 다른 죽음의 경우 사람들은 동정과 연민을 보내지만 자살에는 낙인을 찍는다. 낙인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남아서 겪을 그들의 아픔을, 그들의 처절한 고통을 생각해 보자. 자살자가 죽는 그 순간, 나중에 ‘자살 생존자’로 불릴 그들도 어느 한 부분 혹은 전체가 함께 죽는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들이 글자 그대로 ‘그들’이 아닌 것은 우리들을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 72쪽

 

자신의 죽음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도 죽음준비의 한 항목이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자신이 맞이하고 싶은 죽음의 방식을 미리 정해놓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과 관련해 구체적인 의사표시를 해두면 남은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이 과정 자체가 죽음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가 된다.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가고 싶은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소망 아니겠는가. – 105쪽

 

죽음은 나의 문제이며 동시에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사람의 문제라는 것을 함께 인정하고 나누는 일은 죽음준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죽음의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겪고 그 길을 서로 의지하며 걸어가야 하는 가족들이 죽음에 대한 바른 인식과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거나 죽음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을 때, 아무리 당사자가 자신의 방식대로 잘 죽고자 열망해도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원하지 않는 연명치료 등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일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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