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와 요단강 지난 수요일, <성경의 큰 그림> 아홉 번째로 여호수아서를 공부했다. 모세는 홍해를 건넜고, 후계자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넜다. 어느 강을 건너는 것이 더 큰 믿음이었을까? 답은 요단강이다. 홍해는 마른 땅이었을 때 건넜지만, 요단강은 물이 범람할 때에 건넜기 때문이다.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찬양이 있는데, 천국에 들어간 것을 요단강을 건넌 것으로 해석하는데, 이 해석은 오해를 일으킨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요단강을 건넌 후, 가나안 땅의 이방인들과 수많은 치열한 전쟁했지 결코 천국에 들어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홍해를 건넌 것은 예수를 구주로 믿어 세례받고 죄사함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나의 옛 사람도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롬6:6).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만사형통인가? 아니다.
홍해를 건넌 상태가 가장 위험하다. 홍해를 건넌 후 광야 40년 훈련을 받는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내 맘대로 살려고 하는 상태이다. 아직도 성령님께 순종하며 살지 않고, 자기 생각과 감정과 지식에 따라서 행동하는 자아중심의 삶이다. 구원받은 백성이지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자아에 의해 살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상태이다.
요단강을 건넌 것은 ‘자아의 죽음’을 의미한다. 나의 자아는 죽고 , 말씀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이다. 요단강을 건넌 후 수많은 치열한 싸움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믿음으로 차지하는 삶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그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내 삶속에 하나님 나라에 저항하는 세력을 몰아내는 싸움이다.
정리하면,
1. 홍해를 건너기 전의 삶: 죄와 사망과 사탄의 세력 하에서 어두움가운데 있는 삶이다.
2. 홍해를 건넌 삶: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을 믿고, 죄사함받아 구원받은 자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때가 가장 위험하다.
3. 광야 40년 생활: 옛 사람은 죽었는데, 아직도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아 중심의 삶을 사는 혼적인 삶이다. 자기 느낌과 생각과 지식을 따라서 살아간다. 이러한 상태에서도 기도도 잘하고, 봉사도 잘하고, 목회도 잘하지만 그러나 아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성령에 인도함을 받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4. 요단강을 건넌 생활: 홍해를 건널 때 죄의 몸(옛사람, 육체적 삶)이 죽었다. 요단강을 건넜다는 것은 자아의 죽음, 혼의 죽음을 말한다.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삶이다.(갈2:20). 이 때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역사하는 성령님께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거역하며 저항하는 아말렉과 가나안의 이방족속들을 물리치는 믿음의 싸움을 사는 삶이다.
결론적으로, 홍해를 건너서 구원받은 자녀가 되고, 요단강을 건너서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삶이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