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도대체 ‘죽은 자의 다시 삶’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것은 인간의 지성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세계는 우리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신앙의 참된 결단과 갈림길은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사실로 믿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부활신앙이 어떻게 서서히 성장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허탄한 것’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려고 안식 후 첫날에 찾아갔으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눅24장).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선포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단지 성인의 하나로 여기는 것, 예수님을 성경책 속에 갇혀 있는 영웅으로 보는 것, 예수님을 도덕 교사로 보는 것, 이런 입장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책 속에 갇힌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분이시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오늘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부활신앙을 통해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느냐, 아니면 이 세상을 살다 간 한 현인으로 대하느냐 우리는 택일을 해야만 합니다. 부활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부활의 신비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은 것 가운데서 산 것을 찾는 데가 어디입니까? 이미 죽었기 때문에 묻어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지난 날의 갈등과 상처들, 그대를 비참하게 만드는 좌절이 아직도 당신을 괴롭힐지 모릅니다. 그대 안에 죽은 것들을 무덤에 묻어버리십시오. 상처 입은 인생사의 무덤을 새삼스럽게 파헤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부활의 주님과 오늘을 충만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앞으로 몇 주에 걸쳐서 누가복음 24장과 사도행전 1-2장을 통해서, 부활의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동행하시는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예수님의 승천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유익이 무엇인지, 성령을 보내주신 후에 교회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빈 무덤, 세마포 옷, 제자들이 다시 일어서서 부활의 증인이 되고 순교함, 부활의 공동체인 교회가 세워진 것이 부활의 증거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죄인이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부활의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