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사는가? 내가 왜 여기 있나?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할 때 우리 인생은 흔들리고 방황하고 무기력해집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방인을 전도하는 사도로 부르셨다’는 정체성입니다. 사도바울의 정체성을 생각하면서 저는 한 주간 동안 목사로서 내가 오늘 여기에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목사로서 제가 할 일은 하나님의 양떼를 생명의 말씀으로 먹이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혼을 돌보는 일입니다. 끊임없이 질문하며 성도들의 영혼을 살피고 말씀을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하는 믿음’을 가졌는가? 중생(重生, 新生, rebirth)하였는가? 개인적인 기도생활과 말씀생활을 하는가? 성령님께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나? 성령의 열매를 성품 속에서 맺어가고 있는가?
목사로서 저의 역할은 시계추와 같습니다.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를 오가면서 성도들의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응답을 성도들에게 전합니다. 시계추가 멈추어 서있으면 죽은 것처럼 목사도 영적 활동이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목사는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인생의 많은 물음들에 귀기울입니다. 그러나 목사는 사람에게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인생의 문제들 또는 감사한 일들을 하나님께 가져가서 아뢰어야 합니다. 목사가 하나님과만 친해서도 안됩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변화산위에다 집을 짓고 내려오지 않으려는 베드로를 주님은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은혜와 사랑을 하나님께 받아서 세상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님, 여러분도 시계추와 같이 날마다 생기는 마음의 생각들과 인생의 문제들을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아뢰세요. 그리고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세요.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께 귀기울이고, 하나님께 은혜를 받지만 기도하는 자리에만 머물지 마시고 삶속으로, 이 세상 속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유한한 이 세상에 속하였습니다. 동시에 영(spirit)으로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만남을 계속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저는 하루 동안에 생긴 일들과 성도들과 교회의 일들을 하나님께 아뢰며 응답받는 기도의 시간이 참 좋습니다. 기도의 축복을 누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