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역할은 성도들의 영혼의 건강상태를 살피며 돌보는 것이다. 목사는 말씀을 준비하여 전함으로써 성도들을 섬긴다. 필자는 설교준비를 위해서 기도하고 성경을 묵상하고 독서하며 설교자료를 수집한다. 주석책을 참고하고 설교집들을 읽거나 듣기도 한다. 신문을 통해서 사회의 이슈들을 파악하면서 오늘에 적합한 말씀을 전달하고자 한다.
이러한 설교사역은 하늘의 천사도 흠모하고 차지하고 싶은 놀라운 특권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러한 사역의 감격과 은혜를 잃어버리고 설교가 부담이 되고 기쁨을 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독서도 하고 신문과 뉴스도 들으면서 성경을 통해서 설교를 준비하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하나님께 겸비하며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가르침보다 사람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고,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인정보다 보이는 사람들의 인정에 민감했던 자신을 발견하고 참회하였습니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이제 주님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다시금 말씀하여주시고, 다시금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는 새 은혜를 주셨다.
왜 이런 영적인 위가가 찾아왔을까? 책과 사람들의 가르침은 당장 듣기 쉽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님께 시간을 내야 한다. 인간의 소리를 잠재우고 잠잠히 기다려야 한다. 겸손함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 듣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옛 사람이 주님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음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주님의 부활과 연합하여 새 생명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이라면 누구나 성령님을 모시고 산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것은 이것을 잊고 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음으로 알고 살아가는 것이 복이며 능력이다. 위로이며 기쁨이고 소망이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 육신의 생각은 자기만을 높이기 때문이며, 그 배후에는 사탄이 있기 때문이다. 오직 성령의 생각만이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목양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