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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실존주의적 인생사용법키르케고르나로 존재하는 용기》고든 마리노 저, 강주헌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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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선물

사역을 마친 일요일 저녁, 뜻밖의 선물이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나에게 책 선물을 보내올 만한 곳을 두 곳 정도 꼽아보았다. '누가 보냈을까?' 생각하며 포장지를 뜯었다. 선물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최근에 '실존주의'를 정리하려고 원서로 구입하려던 책 《실존주의자의 생존 지침서The Existentialist's Survival Guide》가 번역되어 내 손에 들어오다니. 너무나도 놀랍고 기뻤다. 한국어판 제목은 이 책의 주인공 쇠렌 키르케고르(1813-1855)를 내세운 《키르케고르, 나로 존재하는 용기》이다.

 

실존, 실존주의란?

이 책의 차례를 이루는 일곱 가지 주제들은 누구에게나 공감이 되는 것들이면서 실존주의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다. 불안, 우울과 절망, 죽음, 진정성authenticity, 신앙, 도덕성, 사랑. ​이 중 한두 개는 누구나 한번쯤 깊이 빠지거나 천착해봤을 것이다. 실존주의에 관한 기존의 책들과 비교했을 때 이 책의 특징은 실존주의의 등장 배경과 미국에서의 흐름을 잘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존주의의 주된 특징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실존주의는 개인성(individuality)을 강조하며 실존주의자들은 삶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관심을 기울인다. 실존주의자들을 하나로 묶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학문적 철학에 대한 반감이다. 실존주의자들은 개념을 소개하는 이론을 벗어나서,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이야기나 묘사 형식으로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소설가나 시인 등 작가로 활동한 이들이 많다. 니체, 카뮈, 사르트르,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이 그렇다.

 

“'실존'이란 개념은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이론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피하려는 구체적인 실존을 뜻한다.” _24쪽

 

또한 이 책은 필자와 인연이 있는 저자인 고든 마리노의 반(半) 회고록이기도 하다. 저자가 만난 키르케고르를 통해 저자의 생각과 삶을, 그 의미를 진솔하게 전달하고 있다. 키르케고르 연구서라는 이미지를 빼고서도 키르케고르 사상을 풍성하게 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고든 마리노와의 인연

2008년 8월, 필자는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만 3년을 살다가 아내와 아들과 딸을 데리고 미네소타주로 떠났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서 이틀을 머물고, 사우스다코타주에서 친구도 만나며 일주일 정도 운전해서 미네소타주 노스필드에 도착했다. 키르케고르 연구학자 자격으로 세인트올라프 칼리지의 키르케고르 도서관에서 연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인트올라프 칼리지는 미국의 10대 명문 대학(college)이며 미국에서 유일하게 키르케고르 도서관이 있는 곳이다. 고든 마리노는 키르케고르 저술과 연구 자료들만 모아놓은 그 도서관의 관장이었다. 몇 번인가 인사를 했고, 한두 번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나는 도서관의 연구실 하나를 배정받았고, 일주일 내내 24시간 아무 때나 도서관을 드나들 수 있는 마스터키를 받았다. 새벽이고 자정이고 내가 원하는 때에, 연구실에서 홀로 밤을 지새우며 연구할 수 있었다.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은퇴를 몇 년 앞둔 친절한 사서 신시아 룬드(Cynthia Lund)는 연구 자료를 찾는 데 도움을 주었고, 나를 '키르케고르 학자'(Kierkegaard Scholar)라고 불러주었다. 너무나도 생경하고 과분한 호칭이었다. 특별한 관심과 격려를 받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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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장 고든 마리노, 그가 책을 낸 것이다. 그에게 이런 옛이야기가 있는 줄은 몰랐다. 고함소리가 그치지 않았던 불행하고 긴장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술과 마약에 취해 절망적인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으며, 권투선수 출신으로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의 스파링 파트너를 한 경력도 있다. 핵주먹 타이슨은 키르케고르 애호가이고, 저자는 권투로 타이슨을 만나서 서로 친구가 되었다. 이 책의 33쪽부터 44쪽까지, 저자가 우연히 키르케고르를 만나기 전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데, 다음 일화만 봐도 정말 다혈질에 대책 없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의 첫 번째 부인은 뉴욕에서 만난 니키라는 여인이었는데, 그녀를 처음 본 순간 고든 마리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와 꼭 결혼할 거야.” 그들은 실제로 2년 후에 결혼했지만, 니키는 심한 마약중독자였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무엇을 할지 아무 생각이 없던 그는 온갖 직업을 전전하다가 역시 별 목적의식 없이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러나 첫 수업이 안겨준 열패감에 수업이 끝나고 바로 자퇴서를 내고 말았다. 겨우 펼쳐진 ‘밝은 미래’를 제 발로 차버렸다고 생각한 니키는 그를 떠났다. 운동선수 출신이고, 철학과 대학원에 왔지만 절망의 시간들이 더 많았던 그가 대학원 첫 수업에서 느낀 불안과 절망이 책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명석한 사람들과 공부할 때 누구나 비슷하게 느끼는 점이라고 생각해 인용해본다.

 

“대학원생으로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 들어서던 첫날, 나는 유치원생처럼 초조하고 불안했다. 굵직한 은목걸이도 없었고, 소매가 없는 티셔츠를 입지도 않았다. 점잖은 카키색 바지를 입었고, 옥스퍼드 셔츠의 주머니에는 볼펜이 꽂혀 있었다. 그렇게 반듯한 모습으로 캠퍼스에 들어섰다. 첫 수업은 인식론, 그러니까 지식론 강의였다. 다른 1년차 대학원생들은 한결같이 자신감에 넘쳐 보였다. 강의가 시작되고 15분이 지나지 않아, 학생들은 난해한 문헌들을 언급하며 끼어들었고, 이런저런 주장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시계의 큰바늘이 정신없이 돌아갔고, 나는 대학원 강의실에 앉아 있을 자격이 없는 엉터리 학생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째깍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찔한 두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멍한 상태로 캠퍼스를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그러고는 충동적으로 학적과를 찾아가 자퇴서를 제출하며, 완벽하게 준비해서 곧 다시 돌아오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_40쪽

 

내가 만났던 고든 마리노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정말 절망을 경험한 사람,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사람, 책상머리에서 철학을 연구한 사람이 아니라, 철학과는 거리가 먼 방탕아, 마약중독자, 운동선수였구나. 어쩐지, 내가 그를 만났을 때도 '학자'풍은 아니었다. 피상적으로 알았던 저자에 대하여 책 덕분에 진면모를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고든 마리노에게 이메일 편지로 인사를 전해야겠다.

 

“실존주의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적 메시지는 고통이 인간을 파멸시키거나 바위처럼 몰인정한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영적인 성장을 촉진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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