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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엄마의 사랑과 원죄의 구원. *한국은 물론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에서도 화제가 된 자랑스런 한국인의 작품이다.

 

참 인간이 된다는 것은 '죄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원죄를 직면하기는 싫어한다. 엄마가 우리 삶의 원천임을 알면서도 엄마의 존재를 잘 알지도 못하고, 직면하지도 못했다. 언젠가는 읽었으면 하는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3년이 지난 것 같다. 엄마! 너무나 보편적인 주제이기에 그렇게 미루었나보다.  

 

전지적 작가시점이라고 해도 좋을까? 주인공을 '너'라고 부르면서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서술해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충격이었다. 주인공을 '너'로 지칭한 점, 그리고 따옴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글을 써내려갔다는 점이다. 엄마를 상실한 것을 큰 딸, 큰 아들, 아버지의 시점에서 그려가고 있다. 엄마의 실종은 기실은 이미 오랫동안 엄마의 존재를 우리 기억에서 상실한 것을 고발하고 있다. 

 

단숨이 읽어나갔다. 치유적이었다. 뜨겁게 눈시울과 콧등이 시큰거리는 그 어떤 감정이 솟구쳐오는 것을 몇 차례 느꼈다. 엄마를 한 인간으로 알지 못하고, 엄마는 그저 처음부터 엄마로 알았었던 착각과 무지를 깨우치게 되었다. 

 

이 소설이 치유적인 것은 4장부터다. 엄마의 관점에서 딸에게, 큰 아들에게, 남편에게 마치 엄마의 영혼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가족들과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고 묻혔던 과거가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더욱 치유적이 된다. 엄마가 자녀들을 바라보는 그 관점은 오직 사랑이다. 책망이나 질책이 아니었다. 너무나 사랑하다 못해 자식들에게 미안해하고, 또 자식들 하나 하나를 대견스럽고 존귀한 존재로 들려주고 있다. 복음이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증오나 질책이 아닌, 삶의 굴곡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동반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용히 떠난 너(큰 딸)의 로마여행에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어디냐?" 그곳에서 장미묵주를 부탁하시던 어머니. 바로 로마의 바티칸이 아니던가. 미켈란젤로가 4년동안 천정에 천지창조를 그린 그 성당, 거기서 그녀는 장미묵주를 구할 수 있었고, '성모마리아상'에서 엄마와 화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도한다. "엄마를 부탁해!" 엄마의 사랑을 모르는 주인공에게 성모마리아상의 모습(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모습)은 하나의 구원의 길을 제시해준다.

 

엄마를부탁해_신경숙.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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