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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 글래즈너 <진노의 잔-소설 본회퍼> 

 

왜 이 책을 읽기가 꺼려지는가?

627쪽의 두꺼운 책이다. 하지만 글자수는 그리 많지 않다. 독일의 지명과 인명은 왜 이리 낯선지 하지만 독일어와 불어의 기초는 아니까 좀 집중하면 극복할 수도 있다. 더 꺼려지는 이유는? 예언자요, 수난자요, 신학자요, 개혁자인 본 회퍼를 만나는 것이 나와는 동떨어진 주제요, 또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이란 인상이 든다. 나치 죽음의 수용소, 연합군이 수용소를 점령하기 불과 11일 전에 당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그의 사형, 고난, 민족이냐 신앙이냐를 선택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선택의 문제 등 이 치열한 문제를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1996년 본 회퍼를 만난 이후에 난 그를 가까이 하고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멀리했다. <윤리학> <옥중서신> <나를 따르라: 제자도> <신자의 공동생활> 그의 책이 다 있지만, 밋밋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진노의 잔> 이 무시무시한 책이 내 마음에 불을 지폈다. 본 회퍼의 생애와 삶을 통하여 타오르는 진리의 불이 내 영혼에 붙은 것이다.

 

왜 필연적으로 이 책을 읽어야 했는가?

본 회퍼는 그의 신학과 신앙을 삶으로 그대로 살아낸 유일무이한 사람, 독보적인 존재일 것이다. 그는 성서를 대할 때 진지했다. 단순히 학문적인 유희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간디의 무저항운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간디는 예수의 산상수훈에 깊은 인상을 받고 그것을 그대로 살아내려고 했다. 본 회퍼는 당대의 독일의 신학자들과는 달랐다. 성서속에서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숨결을 느꼈고, 그것을 영혼의 양식으로 삼았다. 감옥에서 그는 말씀기도를 했다. 시편기도,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기도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생애와 수난과 부활, 승천과 재림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이다. "나를 따르라!" 본 회퍼의 제자도는 값싼 은혜를 지적하고, 은혜의 놀라운 가치를 독자에게 회복시켜준다.

 

놀라워라!

감옥생활에서 그는 끝까지 저술활동과 독서를 했다. 물론 자유롭지 않았지만, 비밀리에 옥중서신을 반출했다. 약혼녀 마리아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 제자이자 친구 베트케목사에게 보낸 옥중서신 등이 있다. 그가 마지막까지 들고 있었다는 플루타르크 전기집, 괴테의 책들이 어떤 책인지 궁금하다. 10년간 연구해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상세하고 상상력있게 쓴 <진노의 잔>을 읽으면서, 본 회퍼의 저술들이 새롭게 와 닿았다. 1996년에 구입한 본 회퍼가 쓴 "Love Letter 모음집" 도 이제는 읽을 수 있겠다. 배경을 이해하게 되었으니까. 아니, 본 회퍼는 젊은 나이에 어떻게 독일정계와 교계, 유럽의 교계, 미국에까지도 알려졌을까? 그의 예언자적 통찰력은 얼마나 대단한지, 남들이 모두 히틀러가 독일의 자존심을 살려준다고 그를 응원하고 심지어 교회와 신학자와 하이데거 등도 다 히틀러를 찬양하는데 어떻게 본 회퍼는 히틀러가 독일민족에게 큰 오점을 남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리고 그를 반대했을까? 놀랍다. 히틀러가 총독이 되었을 때, 본 회퍼가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할 때 방송이 중단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용기인가. 본 회퍼는 저항운동을 위해서 영국의 벨주교, 스위스 바젤의 칼 바르트, 스웨덴 등지를 다녔다. 독일로부터 유대인 구출작전을 펼쳤다. 게슈타포에 반대하는 독일 정보국의 최고 책임자의 보호와 지원아래 저항운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게슈타포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고백교회를 섬겼으며, 신학교를 세워 가르쳤다. 계속적인 폐쇄와 방해공작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용기있게 진리의 길을 걸어갔다.

 

치열함: 윤리적 성찰

그는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그의 용기는 대단하다. 히틀러는 마치 미친 운전사로 많은 사람을 치어죽이고 있다. 단지 다친 사람들을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미친 운전사를 제거해야만 한다. '미친 운전사를 제거하는 것, 즉 살인이 정당한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독일은 히틀러의 마술에 빠져들었고, 고위공직자들과 교회의 지도자들과 많은 국민들이 히틀러의 편을 들때에 어떻게 끝까지 "아니다!"라고 부드럽고 단호할 뿐 아니라,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을까? 예수님도 성전에서 하나님의 성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장사치들의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을 때, 그 모습을 보고, 상을 뒤엎고 비둘기와 짐승 파는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았던가! 본 회퍼는 미국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머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징집과 박해가 기다리고 있는 조국 독일로 돌아갔다. 그는 게슈타포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저항운동과 교회 목사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의 부모를 비롯, 그의 형제 자매는 많은 고난을 받았고, 절반이상의 식구들이 처형을 당했다. 

 

이토록 끔찍한데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이사야 53장의 그의 설교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외침처럼,

"고난에 들어간 후에 영광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가 마지막에 남긴 한 마디, "나의 이 마지막이 나에게는 삶의  시작이라고 전해주시오."

1945년 4월 9일의 차가운 날씨속에서 플로센뷔르크 수용소, 세 개의 처형대 위의 밧줄 올가미에 정보국 카나리스제독, 오스터장군, 본 회퍼목사가 나란히 사형을 당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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