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그리스도인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으면 사람은 자동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될까요? 아닙니다. 성숙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은 그런 사람일 것입니다. 정직하게 말하지만 상처주지 않고, 남을 비판하기보다는 자기를 들여다 보며 성찰할 줄 아는 그런 사람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많은 비난을 받습니다. 아마 그 비난의 핵심은 하나님은 잘 아는 체하는데, 정작 자기 자신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발전시키는 열쇠를 제공할 것입니다. “남의 눈에 들보를 빼기 전에 네 눈에 들보를 빼어라.”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좀 더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합니다.
------------------------------------<윤목사의 서평>------------------------------
책의 표지가 세 가지인 것으로 보아서 1999년부터 지금까지 두 세 출판사에서 계속 보강하여 출판된 책이다. 그만큼 이 책은 인간이해와 인간의 성숙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공해주고 있다. 우선 기독교 목회자나 신학자는 연역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이해했다면, 정신과의사 전문가인 저자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으면서 종교와 개인의 성숙을 논한다는 면에서 구별이 된다. 과연 기독교는 인간의 구원만을 제공하면, 인간의 성숙과는 무관하단 밀인가? 인간의 구원은 개인의 성숙과는 무관하고 사후세계에나 이루어지는 것인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 다분히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아니다"라고 반론을 제시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본래적인 자기'를 발견하는 것으로 본다. 그것은 곧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성숙한 인간은 '닫힌 의식'을 볼 수 있는 자기성찰의 능력을 가지게 된다. 곧 '통시적'으로 자기를 보는 것이다. 인간을 이해할 때, 한 개인의 역사를 아는 것을 말한다. 프로이트는 치유란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도 몰랐던 자기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성령님은 사람의 깊은 영과 혼까지 통달하여 아신다. 따라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엇보다도 인간을 이해하기 전에 자기를 온전히 아는 것이다. 자기를 이해하고 알 때, 온전한 인간이해를 방해하는 방어기제들-투사, 합리화, 책임전가, 억압-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
신앙을 가지면 마치 인간적인 개인의 책임과 성숙의 노력은 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모습은 경계해야 할 것으로 본다. 예를 들면, 정신병적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은 귀신들림으로 보고 당사자에게 수치심을 주거나, 개인의 신앙적인 과시의 목적으로 오용하는 사례는 큰 문제이다. 실제로 많은 정신불열증 환자들을 병원의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될 것을 기도원이나 교회에서 귀신축출을 한다고 해서 상태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저 자기도 모르고, 남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말만 잘하는 사람이 되고 있지 않나? 이 책은 그리스도인에게 반성할 점을 제시한다.
진정한 인간이해는 한 개인의 역사를 아는 것이다. 그것은 깊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경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기독교의 구원은 막연히 내세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의 구체적인 삶속에서 자기를 이해하고, 본래적 자기를 회복하는 것이다. 괜히 자신의 관점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거나 조언함으로써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상대방에게 짐만 지우는 그런 경우는 없어야하겠다.
이 책의 최대의 장점은
첫째, 인간 성숙의 열쇠인 닫힌 의식에 대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는 것,
둘째,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정신분석과 인간치료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
셋째, 신학과 심리학의 대화를 시도한다는 점(저자는 정신과의사로서 신학도 공부하였음),
넷째,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속에서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인간관계를 해 나가야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저자는 기독교세계관속에서 성장하여 정신과공부를 하였다. 그는 자신의 신앙세계관에 충실하면서 심리학을 비판수용하였다. 그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저자의 인간이해는 타락한 인간관과 중생한 인간관의 이분법적 구도이다. 따라서, 그 독자를 그리스도인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대화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가 공부한 칼빈신학교의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기독교이해에 머무는 한계때문이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구체적인 인간이해를 제공한 것은 독보적인 공헌이라고 본다. 한국 기독교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