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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종목사가 본 천국과 지옥』, 독자평, 윤덕영 2011. 11. 1

 

장로교의 저명한 목회자요 신학자가 이론서가 아닌 체험적인 글을 낸다는 자체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따라서 독자는 어느 정도 균형있고, 신뢰할 만한 통찰을 이 책에서 얻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환상은 대개 본인이 체험하고 생각하고 느낀 소재들을 바탕으로 하여 진리에 대한 파편적인 통찰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훌륭한 점은 첫째, 단테의 <신곡>과 같은 불후의 문학작품의 기법을 이용하여 천국과 지옥의 환상을 풀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의 창의성이 돋보인다. 둘째, 저자는 통상적으로 "천국과 지옥에 갔다왔다"는 확정적 언어보다는 "보았다"는 표현을 선호하며,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기보다는 기독교 신앙을 성찰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소설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것은 소설이라는 기법이다. 그것은 절대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구도자의 입장에서 본인의 체험을 통하여 독자들이 유익을 얻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저자가 독선과 아집으로 어떤 종교적 신념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저자는 보수교단의 목회자요 신학자로서 '가톨릭에도 구원이 있는가?' '어린아이들도 지옥에 가는가?' '연옥은 있는 것인가?'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셨나?'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나?' 등의 보편적인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면서, 이에 대한 환상에서 얻은 답변을 기술하고 있다.

 

연옥편, 지옥편, 천국편으로 되어 있다. 지옥과 천국은 각각 12관, 12방으로 나뉘어져 있다. 즉, 사후세계에도 공로에 따라 등급이 있다는 것이다. 지옥에는 결코 기쁨과 감사가 없고, 천국에는 결코 원망과 불평이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현실과 사후세계는 '역전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목사와 장로도 지옥에 가 있다든지(지옥편), 천국편에서 살인자인 김모씨가 천국에 와 있다든지 하는 것이다. 천국은 다시 '전도의 산' '기도의 산' '찬양의 산' '섬김의 산' 등 세상에서의 행위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예컨대, 찬양연습했던 것도 찬양의 산에 쌓여 있다. '기도의 산'에서 저자는 제가 기도 많이 했는데, 이것밖에 안쌓였냐?니까, 다른 목사들은 더 쌓인게 없다며 얘기한다. 천국에서는 평신도와 교회지도자들이 역전되어 평신도가 더 큰 공로를 인정받는 것을 많이 보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후세계에는 놀랄 일이 많을 것이다. 역전현상이 일어나니까.

 

천국과 지옥의 이슈를 낡을 사고의 잔재로 여기는 학자들도 있겠으나, 이것은 여전히 기독교의 중요한 이슈임에 틀림없다. 그런 면에서, 이 주제를 다시 생각하고, 한국의 기독교의 행태를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유도한 저자의 용기와 진솔함에 박수를 보낸다. 한때 주목받는 지도자로서 비판과 지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소 과감한 시도를 한 것은 그가 제도와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분명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본서는 학자요 목회자인 신성종목사가 쓴 글이어서 신뢰성이 갔고, 독단적인 주장이나 사이비적인 주관적 견해와는 다르다. 단테의 문학적 형식을 도입한 것이며, 진솔한 질문들로 소설형식으로 이끈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내세의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모든 독자들로 하여금 겸허하게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뿐만아니라, 선교사님과 농어촌의 목회자,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목회하는데 큰 격려가 된다는 것을 느꼈고, 또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일하는 성도들에게도 큰 힘이 되며 소망이 되고 있다. 반면, 세상의 권력과 존경을 다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사람들이 당할 두려움을 통하여 한국교회에 갱신이 일어날만한 책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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